Cardano가 미국 대통령에 의해 미국의 암호화폐 전략 비축 자산 중 하나로 지정되면서, 창립자 Charles Hoskinson이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블록체인 초기의 전도사, 이더리움의 공동 창시자, 그리고 Cardano의 설립자로서 Charles는 최근 몇 년간 독특한 방식으로도 알려져 왔다. 그는 외계 문명 탐사에 자금을 지원하고 의료 연구 기관을 설립하는가 하면, 11,000에이커 규모의 목장을 운영하며 전통 목축업에도 진출했다. Cardano가 다시 업계의 핫 이슈로 부상한 지금, 그의 이야기를 재조명해볼 가치가 있다.
2008년, Charles Hoskinson은 대학에서 수학과 해석적 정수론을 전공하던 중이었다. 수학 외에도 그는 통화 정책 연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같은 해 공화당 하원의원 Ron Paul의 '자유를 위한 운동(Campaign for Liberty)'에 참여했는데, Ron은 연방준비은행이 오히려 인플레이션과 경제 불황을 초래한다며 폐지를 주장했다. 몇 년 후 비트코인을 접했을 때 Charles는 처음엔 크게 개의치 않았다. 통화의 성공은 기술이나 이상이 아닌 실제 사용자 수에 달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013년이 되어서야 그의 생각은 바뀌었다. 비트코인이 금융 거래, 기업 행태, 소유권 증명, 민주주의 시스템까지 혁신할 것이라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는 직접 비트코인을 구매·채굴하기 시작했고, '비트코인 교육 프로젝트(Bitcoin Education Project)'를 창립해 통화 정책부터 블록체인 기술까지 무료 교육 자료를 배포했다. '비트코인 매거진(Bitcoin Magazine)'과도 협력 관계를 맺었다.
당시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초기 단계라 핵심 인물들과의 접촉이 용이했다. 열정적인 Charles는 자연스럽게 핵심 서클에 진입했고,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초기 비트코인 전도사들과 교류하며 첫 창업을 시도했다. 바로 탈중앙화 거래소 Bitshares였다.
Bitshares는 Charles와 이후 EOS를 창립한 Daniel Larimer(BM)이 공동 설립했으나 경영 이견으로 결별했다. Charles는 벤처 캐피탈 유치 후 주주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BM은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고수했다. 창업 초기 BM의 아버지 Stan Larimer도 참여했고, Charles의 거처 역시 Stan이 제공한 아파트였다. 이견이 표출되자 Charles는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2013년 10월, 캐나다 비트코인 연합의 Anthony Di Iorio와 비트코인 매거진의 Mihai Alisie가 Charles와 이더리움 창립자 Vitalik Buterin을 초청해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 생태계 구상을 논의했다. Gavin Wood, Jeffrey Wilcke, Joe Lubin 등도 이후 합류했다. 2014년 1월 마이애미 북미 비트코인 컨퍼런스에서 Anthony가 렌트한 해변가 오두막집에서 3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이더리움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이더리움 CEO가 된 Charles는 암호화폐 전도사에서 업계 핵심 리더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더리움의 급속한 성장은 중대한 기로에 직면했다. 수익형 기업으로 갈 것인가, 비영리 모델을 유지할 것인가? Charles는 구글을 본떠 수익화해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Vitalik은 탈중앙화 정신에 충실한 비영리 모델을 고수했다. 결국 Charles는 창립 6개월 만에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년에 그는 Vitalik의 선택이 더 옳았음을 인정했다.
이더리움 퇴진 후 학계로 복귀하려던 Charles는 전 동료 Jeremy Wood를 만나 운명이 바뀌었다. 2015년 두 사람은 블록체인 연구 개발 회사 IOHK(Input Output Hong Kong)을 공동 창립했다. 초기 자본금은 불과 수천 달러에 불과했지만, 비트코인으로 결제받은 개발 계약과 이후 찾아온 암호화폐 불로마진으로 자체 자금을 확보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Cardano였다. 2017년 Cardano 창립 당시 Charles는 벤처 캐피탈 유치를 완강히 거부했다. "VC는 프로젝트에서 자신들의 몫을 먼저 챙긴다"며 탈중앙화 원칙을 강조했다.
Cardano의 급성장으로 IOHK는 에든버러 대학과 도쿄 공업대학 연구실을 후원할 여력이 생겼고, 이는 Ouroboros 합의 프로토콜 개발로 이어져 Cardano 블록체인의 핵심 메커니즘이 되었다. 2018년에는 에티오피아 정부와 블록체인 기술 협력도 발표했다.
암호화폐 성공 이후 Charles는 자선 사업에도 적극 나섰다. 2021년 카네기 멜론 대학에 2,000만 달러를 기부해 'Hoskinson 수학 센터’를 설립했고, 2023년에는 하버드 천체물리학자 Avi Loeb와 함께 150만 달러를 투자해 파�아뉴기니 근해에 추락한 ‘유성 파편’ 탐사를 진행했다. Loeb 팀이 외계 생명체가 만든 미세 금속구를 발견했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천문학회는 이 물질이 인간이 생성한 재와 유사하다고 발표했다.
외계 생명 탐사 외에도 Charles는 목축·요식·의료·식물 유전공학·전세기 렌털 등 다방면에 진출했다. 와이오밍주 휘틀랜드 인근에 11,000에이커 규모의 버팔로 목장을 운영 중인 그는 지역에 좋은 식당이 없다는 이유로 Nessie 레스토랑과 위스키 라운지를 직접 열었다. "암호화폐 친화적"을 강조하는 이 레스토랑 외에도, 의사 집안 출신인 그는 와이오밍주 질레트에 1,800만 달러 규모의 Hoskinson 건강·웰니스 클리닉을 개소했다.
"지구온난화 해결을 원한다면 식물 유전공학에 투자해야 합니다"라는 신념으로 Charles는 최근 야광식물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 식물이 탄소 포집과 유해 물질 제거 등 환경적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팀은 이미 담배와 애기장대 식물의 유전자 변형에 성공했다.
논란과 무관하게 Cardano는 꾸준히 성장 중이다. 기술력과 시장 포지셔닝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더라도, Charles Hoskinson이 블록체인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그의 이야기가 암호화폐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